2026-01-12

박대일 씨가 쓰촨성 당링(黨嶺)에서 트레킹 도중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1학년(중국어로 대일·大一)생이 아니라 이름이 ‘대일’인 박대일입니다. 오늘 제가 찾아온 곳은요....” 한국인 크리에이터인 그는 거의 모든 영상에서 이 대사로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편안하고 진실하며 꾸밈없는 그의 소통 방식 덕분에 그의 채널 ‘대일의 먹방 생활(大一的吃貨生活)’은 1인 방송 플랫폼에서 꾸준히 안정적인 인지도 기반을 쌓아왔다. 현재 그는 웨이보(微博), 빌리빌리(嗶哩嗶哩, bilibili), 더우인(抖音),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50만 명 이상의 국내외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영상은 의도적으로 ‘외국인의 시선’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중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으로서 거리 곳곳을 누비며 맛있는 음식과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중국 이야기’를 전한다.

박대일 씨(오른쪽 첫 번째)가 부모님을 모시고 상하이에 위치한 고전 의상 테마 레스토랑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 전공자’에서
‘중국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거’가 되기까지
그와 중국의 인연은 2011년에 시작됐다. 당시 한국의 모 대학 영화과 4학년 학생이었던 그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일해볼 사람이 있느냐는 교수님의 물음에 ‘한번 가서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상 도착한 베이징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중국과는 많이 달랐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분위기와 에너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에 흥미가 생긴 그는 계약이 끝나고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베이징에서 일 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도 어떤 힘이 나를 계속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아갈 기회를 찾았다.” 2018년 다시 중국 땅을 밟은 그는 청두(成都)와 상하이(上海)에서 차례로 일한 후 2020년 청두에 정착했다. 그리고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하며, 영화 전공자에서 중국 생활을 기록하는 브이로거로 변신했다.
음식, 차이를 잇는 공통의 언어
창작 초창기를 되돌아보면, 그 역시 ‘무엇을 촬영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으로서, 그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중국에서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자신의 생활을 보여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처음엔 뚜렷한 목표 없이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음식이야말로 언어와 문화, 심리적 장벽을 초월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여행할 때나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함께 식사하는 것이야말로 가까워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에게 ‘음식’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그 지역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
‘대일의 먹방 생활’ 영상에서 그의 발자취는 쓰촨(四川), 구이저우(貴州), 광둥(廣東), 저장(浙江), 신장(新疆), 간쑤(甘肅), 푸젠(福建), 베이징, 상하이, 후베이(湖北)에 이르기까지 중국 전역을 아우른다. 이빈(宜賓)의 란몐(燃面, 쓰촨 특색의 불맛 국수)과 러산(樂山)의 보보지(鉢鉢雞, 매운 국물에 재워 차갑게 먹는 닭고기 요리)부터 투쑨둥(土筍凍, 식용 갯지렁이로 만든 젤리 형태의 간식), 창펀(腸粉, 쌀가루 국수를 얇게 쪄 만든 광둥식 전통 음식), 나아가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토끼 머리 요리나 뉴볘(牛癟, 소의 위에 소화가 덜 된 풀 찌꺼기를 짜서 얻은 즙) 훠궈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떤 음식이든 기꺼이 도전했다.
촬영을 거듭하며 지역별로 다른 음식 문화를 접할수록, 중국에 대한 그의 인식은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그는 점차 음식 이면에 숨겨진 중국 문화에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왜 쓰촨과 충칭(重慶)의 훠궈는 매운 홍탕 육수를 쓰고, 베이징 전통 훠궈는 맑은 탕을 선호할까?’, ‘왜 네이멍구(內蒙古)와 신장의 양고기는 누린내가 거의 없을까?’, ‘왜 장시(江西), 후난(湖南), 쓰촨의 매운맛은 제각기 다를까?’와 같은 의문들이다. 이러한 의문을 품은 그는 영상에서 현지인들과 점점 더 자주 소통하며, 음식을 먹는 방법이나 특정 요리가 유명해진 이유 등을 묻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손님이든 가게 주인이든 모두가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다”라며 “덕분에 음식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됐고, 중국의 음식 문화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재료가 중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연속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들 때 차이점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공통점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는 “결국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따뜻한 음식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라고 강조했다.

박대일 씨(오른쪽 네 번째)가 2025년 제7회 ‘제3의 눈으로 본 중국(第三隻眼看中國)’ 국제 쇼트폼 대회에서 1인 미디어 부문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완벽함을 내려놓고 진정성으로 돌아오다
팔로워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그는 자신의 콘텐츠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점차 깨달았다. 날로 커지는 영향력과 더불어 크리에이터 관련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그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수상은 전환점이 됐다. 이제는 단순히 조회수에만 연연하지 않고 ‘이 내용이 진실한가?’, ‘혹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없는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게 된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창작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됐다. 그는 콘텐츠 하나하나를 ‘철저한 검증을 거쳐 신뢰할 수 있고’, 시청자들의 사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 창작의 깊이는 기술적인 정교함에 매달린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회귀’에서 출발했다. 영화 전공 출신 크리에이터인 그는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1인 방송 세계에서 알고리즘의 흐름과 업데이트 주기에 쫓기며, 창작 활동이 점점 데이터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동안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초심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전문 기관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 ‘리얼리티’에서 만큼은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후 그는 의식적으로 사실적인 카메라 워킹에 집중하며, 과도한 효과를 줄이고 현장의 소리와 분위기를 그대로 담도록 했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가공되지 않은 듯한 ‘생생한 현장감’은 점차 그의 콘텐츠를 상징하는 핵심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영상이 일상적 삶 속에 스민 미세한 감정들을 포착하는 데 주목한다. 식사하고, 대화하고, 걷고, 미소 짓는 한 사람의 삶의 순간들이 화면 위에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기존에 추상적으로 인식되던 국가나 문화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람’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바로 이러한 진솔한 기록 방식이 국가 간 인식의 장벽을 소리 없이 허물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이런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2011년 그가 중국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그의 부모님은 낯선 환경에 대해 불안해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아들의 영상을 시청하며, 중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2025년 초, 그의 가족은 쓰촨으로 현지 밀착 여행을 떠났다. 청두의 좁은 골목에서 부모님은 앞장서서 시장으로 들어가더니 주저 없이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노점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중국이 부모님 눈에 더 이상 막연하고 걱정스러운 곳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변모했음을 실감했다.
그는 “가족의 변화를 보면서 한중 양국 국민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한국 시청자를 위해 유튜브에 새 채널을 개설했다. 이 채널은 중국의 특정 지역이나 주제에 집중해 한국인들이 중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 많은 한국인이 따뜻한 식사 한 끼, 정겨운 거리 풍경을 통해 중국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영상이 중한 교류의 징검다리가 되길
그는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로 신장을 꼽았다. 그는 “중국이 정말 넓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청두에서 한국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가는데, 신장 이리(伊犁)까지는 4시간이나 걸렸다”라며 당시의 놀라움을 전했다. 궈유러우반몐(過油肉拌面, 기름에 볶은 고기를 얹은 비빔면), 서우좌판(手抓飯, 식재료를 기름에 볶은 뒤 육수를 부어 익혀 만드는 쌀 요리), 양러우촨(羊肉串, 양꼬치) 등 현지 음식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신장의 다채로운 자연 풍광과 문화적 분위기에 그는 “오길 정말 잘했다”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여행 경험이 축적되면서, 그는 점차 다음 단계의 창작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됐다.
2026년을 맞아 그는 자신을 위한 새로운 촬영 계획을 세웠다. 그는 더 이상 ‘맛집 탐방가’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며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를 시도해 볼 계획이다. “예를 들어, 중국 현지에서 중국 요리 하나를 조리 과정까지 완벽하게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직접 대접해 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는 같은 요리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해되는지를 관찰하면서, 차이 속에서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
또한 산과 자연을 ‘보는 여행’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등산하고 걷고 체험하며 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기록할 생각이다. 그는 “처음 중국에 온 것은 일 때문이었지만, 이제 이곳은 내 삶과 커리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영상은 양국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이바지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다.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의 호기심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있다. 앞으로 그는 더 많은 중국 도시를 누비며 각 지역의 미식을 경험하고, 그 과정을 담은 영상을 통해 미식과 문화가 어우러진 국경을 넘는 소통의 가교로서 자신의 여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글 | 푸자오난(付兆楠) APC 기자
사진 | 박대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