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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를 화폭 삼아 빚어낸 삼산오원의 공간 구조와 문화 품격


2026-01-12      

이화원 곤명호를 가로지르는 십칠공교는 청나라 건륭 15년(1750년)에 세워졌으며 길이가 150m에 이른다.


삼산오원은 베이징 서북부 교외에 있는 청나라 시기 황실 원림을 중심으로 여러 역사 시기의 문화유산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삼산은 향산(香山), 옥천산(玉泉山), 만수산(萬壽山)을, 오원은 정의원(靜宜園), 정명원(靜明園), 이화원(頤和園), 원명원(圓明園), 창춘원(暢春園)을 가리킨다. 베이징 하이뎬문화발전촉진센터의 위페이리(于佩麗) 부주임은 현재 삼산오원 지역의 전체 보호 계획 범위는 68.5㎢에 달하며, 여기에는 청나라 시기 황실 원림을 필두로 하는 각 역사 시기의 문화유산과 산수의 빼어난 지형 및 경관이 이루는 전체적인 구조,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질서가 포함된다고 소개했다.


이화원 장랑의 총길이는 728m에 달하며 청나라 건륭 15년(1750년)에 지어졌다.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방화로 소실된 후 1888년 재건됐다.

 

온갖 격변을 견뎌온 황실의 보물

삼산오원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곳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이화원이다.


이화원은 ‘사람의 손으로 짓되, 마치 자연이 빚어낸 듯 조화로워야 한다(雖由人作, 宛自天開)’라는 조경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산수를 중심으로 삼아 그 설계가 절묘하고 배치가 정교하면서도 독창적이다. 강남(江南) 원림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북방 원림의 웅장함, 여기에 여러 민족의 건축 양식이 어우러져 황실 원림의 화려하고 웅대한 기풍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연의 정취를 가득 품고 있다.

동궁문(東宮門)을 통해 이화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인수전(仁壽殿)이다. 전각 앞 구리로 주조된 용, 봉황, 기린 모양을 띤 조형물 세 점은 이 원림이 겪어온 세월의 변천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면 곧바로 곤명호(昆明湖)가 펼쳐진다. 호숫가에 서면 산들바람이 얼굴을 가볍게 스치고, 물결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금빛이 일렁인다. 호수 위에서는 배가 유유히 지나가며 수면 위에 한 폭의 살아 있는 수묵화를 그려낸다.


호수 위로는 긴 다리가 남호도(南湖島)와 호수 동쪽 기슭의 곽여정(廓如亭)을 잇고 있다. 이 다리가 바로 이화원의 명물 십칠공교(十七孔橋)다. 다리 난간에는 백 개가 넘는 석주(石柱)가 늘어서 있고, 각 석주 위에는 서로 모양이 다른 작은 사자들이 조각돼 있다.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사자가 있는가 하면, 어리숙해 보이지만 귀여운 사자도 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만수산(萬壽山) 위로 팔각형 중첩 처마의 불향각(佛香閣)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더욱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불향각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화원의 아름다운 풍경 대부분을 조망할 수 있다.


호수 북쪽 기슭을 따라 이어진,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긴 화랑(畫廊, 그림으로 장식한 복도)’인 이화원 장랑(長廊)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 보자. 장랑 서쪽 출구로 나가 석방(石坊)을 지나 북쪽으로 꺾으면 쑤저우제(蘇州街)의 상점 거리가 나온다. 이어서 후호(後湖)와 해취원(諧趣園)을 둘러볼 수 있고 계호교(界湖橋)를 건너 서제(西堤)로 들어가는 코스도 모두 괜찮은 선택이다. 특히 건륭제(乾隆帝)가 서호(西湖)의 소제(蘇堤)를 본떠 만든 서제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굴곡을 이루며 길게 뻗어있는데, 소제처럼 중간에 여섯 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고 길이는 무려 2600m에 달한다. 특히 봄이 되면 제방 위로 푸른 버들과 붉은 복사꽃이 어우러져 봄나들이와 경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이화원은 지금까지 가장 완전한 상태로 보존된 황실 원림이지만, 남서쪽에 있는 창춘원과 원명원은 외세 침략으로 인해 파괴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제2차 아편전쟁(1856년 10월~1860년 10월) 당시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한 뒤 주요 원림을 불태우고 내부의 진귀한 보물을 약탈하면서 창춘원과 원명원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창춘원의 경우 오늘날까지 은우사(恩佑寺)와 은모사(恩慕寺) 두 곳의 석재 산문(山門, 절의 대문)만 유적으로 남아있다.


붉은 단풍에 둘러싸인 향산 근정전

산수에 깃든 원림의 기억

매년 10월이면 향산에 겹겹이 펼쳐진 숲이 짙고 옅은 붉고 노란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단풍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향산의 역사는 요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금나라 대정(大定) 26년(1186년) 3월 향산사(香山寺)의 초기 형태가 완성됐고, 금나라 세종(世宗)은 이 사찰에 대영안사(大永安寺)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청나라 강희(康熙) 16년(1677년)에는 향산사 인근에 행궁이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건륭 10년(1745년)에는 향산에 정의원을 세워 이십팔경을 완성했다.


동문 안에 있는 근정전(勤政殿)은 정의원 이십팔경의 으뜸으로 건륭 황제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20분가량 오르면 향산사에 이르는데, 이 고찰은 청나라 전성기 당시 면적이 3만 ㎡를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이후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8개국 연합군(1900년 영국·미국·독일·프랑스·러시아·일본·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연합군이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킴)에 의해 파괴됐다가, 2017년 복원 뒤 다시 개방됐다. 매년 가을이면 고색창연한 사찰과 붉은 단풍이 절경을 이루며 관광객들의 필수 사진 촬영 명소가 됐다.


향산사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면 서월애(棲月崖)에 다다른다. 이곳은 지대가 비교적 높아 향산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데,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드는 시기에는 특히 장관을 이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향로봉(香爐峰)을 향해 다시 나아가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며 오르는 길마다 색다른 각도에서 향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향로봉은 향산의 최고봉이다. 날씨가 좋을 때 정상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웅장한 기세의 팔각 7층 탑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옥천산 정명원 최정상에 있는 옥봉탑(玉峰塔)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탑이다.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8개국 연합군의 방화와 약탈로 옥천산 정명원은 한때 폐허가 됐었다. 신중국 성립 후 대대적인 보수와 녹화 보호 작업을 벌였지만, 아직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옥봉탑은 향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것 외에 이화원 곤명호에서도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자연의 풍광을 정원의 일부로 빌려와 경관을 완성하는 ‘차경조원(借景造園)’ 기법의 정수로 중국 전통 원림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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