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8
쯔보의 역사는 약 8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후리(後李)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주(西周) 시대(기원전 1046~기원전 771년) 제후국 제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이후 춘추(春秋) 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76년)에 접어들며 주(周) 왕조의 세력이 약화되자, 제후국들은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바로 이 시기에 제나라는 주변 국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후대에 ‘제장성(齊長城)’이라 불리게 된 군사 방어 시설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제장성은 중국에 현존하는 고대 장성 가운데 정확히 유적이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장성으로, 1987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학계는 제장성이 춘추 시대에 축조되기 시작해 전국(戰國) 시대에 완성됐으며, 건설 기간이 170여 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베이징(北京)의 장성 관광지인 바다링(八達嶺) 장성(명·明나라 시기의 장성)보다 약 2000년 앞선 것이다.

저우춘 고상성 관광지에 남아 있는 옛 간판
쯔보 지역에 남아 있는 제장성 유적은 주로 쯔보 남부 지역에 분포하며, 길이는 약 110㎞에 달한다. 초여름 햇살은 포근하게 장성을 감싸고,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제장성은 전란의 시대를 지나 평온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이 땅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도자기와 유리 공예
꺼지지 않는 가마에서 꽃핀 ‘불과 흙의 예술’
제장성 자락에 자리한 보산구(博山區) 옌선진(顏神鎮)에서는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감탄을 자아내는 유리 불기 공예 시연이 펼쳐진다. 장인이 1m가 넘는 취관(吹管, Blowpipe)을 벌겋게 달아오른 유리 용액 속에 넣어 돌리고, 들어 올렸다가 다시 회전시키면 유리 용액이 엿가락처럼 취관 표면에 감긴다. 떠낸 유리 재료를 성형판 위에서 고르게 다듬고, 식히는 과정에서도 취관을 계속 돌리며 반대쪽 끝에 입을 대고 공기를 불어넣어 유리를 풍선처럼 부풀린다. 이어 핀셋을 이용해 수시로 정교하게 형태를 다듬는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일련의 동작에 현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감탄했다.
보산은 중국에서 ‘유리의 고장’으로 불린다. 원(元)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조성된 21곳의 고대 유리 가마터 유적은 중국 최초의 대규모 유리 생산 단지로 평가받는다. 청나라 시기에는 쯔보의 유리 장인들이 자주 수도로 불려가 ‘어장(御匠, 황실의 장인)’으로 활동하며 황실용 유리 기물을 제작했다.

쯔보 도자기·유리박물관에 전시된 유리 연꽃
유리와 도자기는 모두 불과 흙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과학사 연구자들은 세계 최초의 유리가 도자기에 유약을 입히던 도공의 실수에서 비롯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본다. 실제로 예로부터 유리 생산은 도자기 제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후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고증한 결과, 기원전 6000년경 쯔보 사람들은 이미 모래가 혼입된 둥근 바닥 토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옌선진은 쯔보 지역의 중요한 도자기 생산지다. 사료에 따르면 명·청 시기(1368~1912년) 이곳에는 원형 가마 170여 기가 있었으며, 규모 면에서 보산 지역 6대 가마터 가운데 가장 컸다. 이곳에서 구워낸 우점유(雨點釉), 차엽말유(茶葉末釉) 등은 중국 국내외에서 명품 도자기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신중국 건국 이후 당시 중국 최대 규모의 도자기 공장이었던 산둥 보산 도자기 공장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오늘날 쯔보는 ‘박물관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도자기·유리박물관을 조성해 살아 숨 쉬는 지역 문화 전시망을 구축하고 있다.

관광객이 저우춘 고상성의 조롱박이 걸린 벽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번영했던 상업 도시, 천년을 이어온 비단 문화
춘추전국 시대 린쯔는 중국 최대 규모의 상공업 밀집 지역으로 수공업이 매우 발달했었다. 이후 쯔보에 속한 여러 지역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그중 저우춘(周村)은 탄탄한 수공업 기반과 뛰어난 교통 입지를 바탕으로 한때 북방 최고의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다.
오늘날 저우춘 고상성(古商城)은 다제(大街), 쓰스제(絲市街), 인쯔제(銀子街) 세 개의 옛 상업 거리로 구성돼 있다. 쓰스제와 인쯔제가 만나는 지점에 우뚝 서 있는 육각형 비석에는 ‘금일무세(今日無稅, 오늘은 세금 면제)’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저우춘 상업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역사 인물 이화희(李化熙)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654년 청나라의 중신(重臣)이었던 이화희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저우춘의 일부 토호 세력이 상권을 독점하고, 관청이 각종 명목을 내세워 가혹한 세금을 거두는 바람에 정상적인 상거래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을 목격했다. 이에 그는 저우춘 시장의 모든 세금을 자신이 부담하고, 이를 알리는 비석을 세웠다. 그 결과 저우춘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면세 구역’이 됐다. 세금을 면해 준다는 소식에 중국 전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많은 상점이 들어서면서 저우춘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상업 중심지가 됐다.
일반적으로 산둥은 밀 같은 내한성(耐旱性) 작물을 주로 재배하는 농업 대성(大省)이고, 양잠업은 주로 강남 수향(江南水鄉) 지역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제나라 때부터 이곳 사람들은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러 이를 중요한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수천 년 동안 저우춘에서 생산된 비단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운송됐으며, 펑라이(蓬萊)와 칭다오(靑島) 항구를 통해 해외로 수출돼 저우춘은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를 잇는 중요한 거점이 됐다. 명·청 시기 길이가 730m에 달했던 쓰스제는 산둥 지역에서 가장 번성한 비단 거래 시장이었다.
오늘날 돌로 포장된 옛 거리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길 옆에는 회청색 벽돌로 지은 가옥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다란팡(大染坊), 루이푸샹(瑞蚨祥), 영미연초공사(英美烟草公司) 등 역사적인 상점의 옛 터가 늘어서 있어, 한때 상인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수레 행렬이 끊이지 않던 번화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