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9
지난 1월 13일, 이재명 한국 대통령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을 방문하며 취임 후 첫 방일 일정에 나섰다. 도착 당일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이 묵을 호텔 앞까지 나와 이 대통령을 영접했다. 양국 정상은 악기로 친교를 다지는, 이른바 ‘드럼 외교’도 펼쳤다. 일본 언론은 나라현에서 개최된 일한 정상회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드럼 외교’의 훈훈한 장면과 일본 특유의 환대 문화, 오모테나시를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내 여론은 다소 온도 차를 보였다는 점이다. 상당수 언론은 ‘신중한 관망’의 태도를 보였으며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외교적 퍼포먼스만으로는 역사적 응어리를 씻어내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제기됐다. 한쪽은 뜨겁고 다른 쪽은 차가운 이런 온도차는,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현실과 얽혀 있으며 전략적 이견으로 점철된 양국 간 본질적인 모순이 단순히 ‘활발한 교류’만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한국 국민의 시각에서 한일 관계를 반추해 보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와 그로 인해 아물지 않은 민족의 상처, 해소되지 않은 현안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감정의 거대한 골을 메우지 못한 채 ‘과거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란 실로 요원한 일이다.
역사적 원한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조선반도(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 속에서 오랜 고통을 겪어 왔고, 이러한 역사적 얽힘은 더 이상 단순한 ‘과거의 원한’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 속에 집단적 상흔으로 남아 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왕조 침략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백성을 희생시켰다.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은 조선 왕조를 반식민지 사회의 길로 몰아넣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는 그 비극의 정점이었다. 노동자 수백만 명이 강제 징용됐고, 수만 명의 여성은 속거나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돼 평생 치유되지 못할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한국 영화 <귀향>은 이들의 참혹한 경험을 담았다. 또 황민화 운동을 전개해 창씨개명(일본식 이름 사용)을 강요하고, 한글 사용을 금지하는 등 조선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말살하려 했다.
현실적 갈등은 해결되기 어렵다.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역사 문제는 오늘날 끊임없이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한국 경주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일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드라마와 화장품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가 국회 발언에서 “다케시마(한국 명칭 ‘독도’)는 역사적 사실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일본 고유 영토라는 기본 입장에서 대응해 갈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는 영토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일본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는 것 역시 한국 국민의 정서를 반복적으로 자극하며, 일한 관계의 잠재적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전략적 이견 또한 좁히기 어렵다. 지역 안보와 대외 전략을 둘러싸고 양국은 겉으로는 협력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자의 이해를 추구하는 모합신리(貌合神離)의 관계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미일한 협력을 핵심 안보 프레임으로 삼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하려 한다. 반면 한국은 중한일 협력 강화를 내세워 진영 대립을 피하려는 입장이다. 조선반도 문제에서도 양국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한국은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일본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며 미일한 공조를 통해 조선에 압박을 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조선반도 긴장을 높여 자칫 한국의 대조선 정책을 수세로 몰아넣을 수 있다. 결국 양국의 전략적 목표의 괴리만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
양국의 국내 상황을 보면, 이번 일한 ‘셔틀 외교’ 재개는 상당 부분 양국 국내의 정치적 수요에서 비롯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내세워 경제 회복의 한계와 민생 현안 누적으로 인한 내부 압박을 완화하고자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일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 내 구도의 균형을 도모하고, 자국에 유리한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양국 간의 관계가 ‘호전’되는 듯 보이지만, 민감한 쟁점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한국 여론에선 구조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수단적 협력’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의 실패는 아직 생생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민족 영웅 이순신 장군은 “왜인은 간사하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倭人變詐 不可信也)”라고 말했다. 일본이 진정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형식적인 퍼포먼스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군국주의(軍國主義)적 야심을 포기하며, 이웃 국가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치의 우경화(右傾化)와 신 군국주의라는 위험한 동향을 고려할 때, 이순신 장군의 준엄한 경고는 한국 국민의 마음 속에 경종이자 거울로서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