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6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베이징(北京)과 서울이 저마다의 빛으로 물드는 계절. 두 도시의 개성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품은 베이징 마라톤과 JTBC 서울 마라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11월 첫 번째 일요일에 개최됐다.
달리기, 이 단어는 한때 내 사춘기를 짓눌렀던 ‘잿빛의 굴레’였다. 중학교 시절 매주 치르던 800m 달리기 테스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악몽이다. 그때부터 달리기는 나를 기진맥진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 코스가 마침 내가 재학 중이던 베이징대학 캠퍼스를 지나게 됐고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선수들의 역주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뜨거운 응원 열기 속에서 문득 달리기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히려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가장 뜨거운 소통 방식이자 생동감 넘치는 연결고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세계 각지 마라톤 대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마라톤은 유독 독특한 역사와 개성을 지니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국의 손기정 선수가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한국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그 뒤 1946년, 손기정 선수는 춘천 마라톤을 창설했다. 이 유서 깊은 대회는 매년 단풍이 한창일 때 개최돼 선수들이 달리는 동안 춘천의 남다른 가을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경주 마라톤 코스는 천년 고도의 유적과 비경 사이를 절묘하게 누비며 달릴 수 있다.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제32차 지도자회의(2025 APEC회의)를 앞두고 열린 대회에서는 달리기를 매개로 한국의 문화적 매력과 역동적 에너지를 전 세계에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여러 대회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마라톤은 단연 서울 마라톤이다. 매년 봄 한국 언론사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서울 마라톤과 가을에 개최되는 JTBC 서울 마라톤에는 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각계 러닝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특히, 최근 막을 내린 JTBC 서울 마라톤을 보면, 그 전신은 1999년 시작된 중앙 서울 마라톤(하프 코스)였으나, 이후 풀 코스 마라톤으로 승격됐고, 코스 역시 잠실 왕복 코스에서 벗어나 서울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다채로운 코스로 탈바꿈했다. 올해 대회는 42.195km 풀 코스와 10km 두 종목으로 진행됐으며 각 1만 7천 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모든 참가자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출발해 풀 코스 주자는 올림픽 공원, 10km 주자는 여의도 공원까지 달린다. 휠체어 부문도 별도로 운영돼 골인 지점은 신답역에 마련됐다. 모든 코스가 한강 남북을 가로지르고 있어 참가자들은 달리는 내내 서울이 품은 도시의 활력과 인문학적 정취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두려워하면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달리기 훈련을 돌이켜보니 이제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흘린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평생 건강이라는 탄탄한 주춧돌을 조용히 다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글|쑹샤오첸(宋筱茜),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