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상하이 푸둥 미술관에서 열린 ‘근대를 창조하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온 예술 보물’ 전시를 찾은 관람객이 휴대전화로 고흐의 <자화상>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CNSPHOTO
베이징(北京)엔 늦가을이 한창이지만, 뚝 떨어진 기온도 박물관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중국 국가박물관 서문 밖에는 각기 다른 억양을 쓰며 중국 전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의 구불구불한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을 덮치는 듯한 인파의 ‘열기’를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주요 전시관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박물관 굿즈를 파는 곳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푸드코트 역시 북새통을 이뤘고, 심지어 자판기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전역에서 ‘박물관 열풍’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 전 지역 박물관을 다녀간 총관람객 수는 2023년 12억 9000만 명보다 증가한 14억 명을 돌파하며 다시 한번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올 여름 방학 기간 관람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한 3억 4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특정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그 도시를 찾는’ 여행이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혁신적 체험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하다
“나는 과거를 꿰뚫고, 미래를 내다보는 고대 고촉(古蜀)인이다. 여러분을 신비로운 고촉 왕국으로 안내하겠다…” 어둠이 내려앉자, 진사(金沙) 유적에서 출토된 대형 황금 가면을 형상화한 조형물 옆에서 ‘태고’의 부름이 울려 퍼진다. 기세가 웅장한 고촉의 예악(禮樂)이 울려 퍼지고 빛기둥이 어둠을 뚫고 나온다. 고촉인이 신성한 춤을 추며 방문객들을 3천여 년 전 신비로운 고촉 왕국으로 맞이했다.
이는 쓰촨(四川) 청두(成都) 진사 유적박물관이 선보인 <밤에 즐기는 진사·고촉으로의 시간 여행(夜遊金沙·穿越古蜀): 해설이 있는 뮤지엄 스토리텔링 쇼>의 한 장면이다. 상황극, 심층 해설, 문화 예술 공연, 조명과 음향효과를 하나로 융합한 이 공연에서 관람객들은 ‘고대 고촉인’으로 분장한 해설사를 따라 고촉 문명의 역사와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처음 왔는데 이렇게 멋진 공연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광저우(廣州)에서 청두로 여행 온 차이(蔡) 여사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밤에 즐기는 박물관 투어라니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다. 배우들이 실감나게 연기를 하고 여기에 몰입감 있는 해설이 곁들여져 문화재들이 정말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현대 박물관은 전통적인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터랙티브 체험을 통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뤄양(洛阳) 고분박물관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황릉(帝陵), 고분, 부장품, 고대 석각(石刻) 및 벽화를 한데 모은 대형 테마 종합 박물관이다. 지하 6m에 있는 전시 공간에선 양한(兩漢) 시대부터 송금(宋金) 시대에 이르는 고분 25기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해 선보이고 있다. 관람객들은 그 사이를 거닐며 가까운 거리에서 무덤 구조와 벽돌 조각 벽화를 관찰할 수 있고 천 년 전 장례 문화와 사회 풍경도 엿볼 수 있다.

허난 뤄양 박물관에서 고대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두 관람객이 채회도 여용 앞에 나란히 서서 같은 포즈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사진/VCG
박물관에서 운영 중인 몰입형 체험 프로그램 ‘고분의 보물을 찾아라, 아름다운 지하 궁전 탐험’은 벽화 복원, 탁본, 임모(臨摹) 등 인터랙티브 체험을 결합했다. 쥐번샤(劇本殺,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범인을 찾는 롤플레잉 추리 게임) ‘고분 비밀 탐사’는 소극장 공연과 인터랙티브 체험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낸다. 한편, ‘고분 악무(樂舞) 부활기’ 음악회는 실제 사람이 무덤 속 기록된 음악과 춤을 재현해 색다른 예술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은 유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9월, 쓰촨 광한(廣漢) 삼성퇴(三星堆) 박물관에서 정식으로 선보인 대규모 VR 몰입식 체험 프로그램 ‘삼성퇴 찾기: 제사갱(祭祀坑) 고고학 발굴 현장’은 관람객이 장비를 착용하고 공유된 가상 공간 안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탐색할 수 있다.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마치 ‘삼성퇴 고고학 발굴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와 동시에, 박물관 전시의 범위나 경계 또한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산시(陕西) 시안(西安) 셴양(咸阳) 국제공항이 위치한 훙두위안(洪渎原) 지역은 한(漢)나라 때부터 당(唐)나라 시기까지 줄곧 장안(長安) 근교였기 때문에 중요한 묘지 밀집지가 됐다.
올 2월, 공항 제5터미널 내 6400㎡ 규모의 서부공항박물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공항 건설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집중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기계적 안내 방송 대신 고금(古琴)과 비파 등이 어우러진 중국 전통 관현악의 선율이 흐르고 따뜻한 조명이 공항 여객 터미널의 차가운 색조와 적막을 깨트린다. 당나라 건축 양식을 본뜬 두공(斗拱, 처마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겹겹이 짜 올린 나무 받침 구조)과 비첨(飛檐, 새의 날개처럼 가볍게 위로 들린 처마)은 마치 당나라 전성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과거에는 유물 보호와 공공시설 건설이 별개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중국의 일부 도시 공항에서 유물을 전시하기 시작했지만, 공항 안에 그 지역의 발굴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세운 사례는 서부공항박물관이 세계 최초다.
분주히 이동하는 여행객에게 이 박물관은 시안(西安) 그리고 산시(陝西)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다. 문화·박물관 애호가 다얀(大雁, 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출발이든 도착이든 경유든 모두 상관없이 1시간 정도 시간을 내 관람할 수 있다면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진사 유적박물관 <밤에 즐기는 진사·고촉으로의 시간 여행: 해설이 있는 뮤지엄 스토리텔링 쇼>의 공연 모습이다. 사진/CNSPHOTO
문화상품과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려
문화를 더 많은 대중의 품으로
한때 ‘존재감이 미미했던’ 베이징 고대건축박물관은 ‘천궁 조정(天宫藻井)’ 냉장고 마그넷 하나로 운명의 전환기를 맞았다. 이 굿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뒤, 박물관 일일 관람객 수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단숨에 인기 박물관으로 떠올랐다.
‘조정’은 건축물 내부 천장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돔 형태의 구조물이다. 주로 궁전이나 사찰의 보좌(寶座), 불단의 상단 등 중요한 위치에 설치된다. 베이징 고대건축박물관의 조정 냉장고 마그넷은 박물관이 소장한 만선정각전(萬善正覺殿) 천궁 조정을 본떠 제작됐다.
천궁 조정 냉장고 마그넷은 모두 다섯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은 모두 실제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 설계됐다. 다섯 층은 분리해 따로 배치하거나 혹은 겹치게 쌓아 올려 완전한 조정의 형태를 재현할 수도 있다. 맨 아래층에는 야광 효과도 적용돼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발산한다.
많은 관람객은 이 냉장고 마그넷을 통해 ‘조정’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유물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굿즈는 박물관의 ‘이동하는 전시실’과 같다. 관람객의 문화적 체험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문화를 현대인의 일상에 더 잘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인터넷 시대에는 더 많은 유물이 전시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 더 광범위한 지역과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쌍계(雙髻, 정수리 좌우에 두 개의 상투를 틀어 올린 머리 모양) 머리, 볼에는 연지를 찍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나란히 서 있는 높이 17cm 남짓의 채회도(彩繪陶, 채색 도기) ‘여용(女俑, 여자 인형 부장품)’ 한 쌍은 북위(北魏)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뤄양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부장품 인형 유물 가운데 하나였을 뿐 처음엔 그다지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달 전, 한 쌍의 여용은 소셜미디어에서 뜻밖의 인기를 끌며 누리꾼으로부터 ‘천 년 전 절친’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순식간에 뤄양 박물관에서 가장 핫한 포토존 중 하나가 됐다. 쇼트폼 플랫폼에서는 ‘천 년 절친과 같은 포즈로 사진 찍기’ 등 관련 해시태그 영상들의 조회 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댓글난에는 고대 의복 변천 과정을 설명하는 학자부터 여용 앞에서 똑같은 포즈로 ‘절친 인증샷’을 남긴 관람객까지 다양한 댓글들이 이어졌다.
이렇게 열렬한 반응이 이어지자, 박물관 측도 관람객들에게 더 나은 관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손잡은 여용’을 마지막 전시실에 단독 진열해 관람 동선을 최적화하고 관람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켰다.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막강한 파급력으로 인해 독특한 유물 한 점, 흥미로운 굿즈 상품 하나 혹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용자 게시물 하나가 박물관의 ‘흥행 치트키’가 될 수 있다.
장시(江西) 징더전(景德鎮) 중국도자기박물관의 ‘무어보살(無語菩薩, 깊은 생각에 빠진 나한·羅漢)’은 특유의 표정과 자세로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화제를 모으며 이모티콘으로 제작된 뒤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었다. 또 장쑤(江蘇) 난징(南京) 성벽박물관의 한 성벽 벽돌에는 ‘류더화(劉德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벽돌을 구운 고대 장인의 이름인데, 중국 유명 배우와 동명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며 인증샷을 남기려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박물관도 이제 권위를 내려놓고 온라인으로 활발히 진출하며 대중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2024 더우인(抖音) 박물관 연관 데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더우인에서 박물관 관련 콘텐츠의 데이터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정부 계정과 기관 계정으로 인증된 박물관은 856곳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박물관 굿즈와 소셜미디어의 강력한 시너지에 힘입어, 박물관은 새로운 차원에서 소통의 장을 열고 전통문화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박물관 간 협력
교류와 상호 배움 속 찬란히 빛나는 문명
박물관 간 협력 심화 또한 ‘박물관 열풍’을 가속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각기 다른 기관들이 소장품, 연구 분야, 전시 기획 등 저마다 강점을 바탕으로 자원을 공유하고 상호 보완을 함으로써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문명 간 대화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미술관에서 ‘근대를 창조하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온 예술 보물’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오르세 미술관이 중국에서 선보인 특별전 중 역대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의 작품들로 구성돼, 1848년부터 1914년 사이 오리지널 명작 100여 점이 관객과 만났다.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거의 모든 주요 예술 사조를 총망라한 것이다. 고흐의 <아를의 방>, <자화상>,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 등 거장의 걸작들이 상하이에 집결해 중국 관람객들은 먼 파리에 가지 않고도 클래식 예술의 정수를 직접 감상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저장(浙江) 자연박물원과 일본 후쿠이 현립공룡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저장·후쿠이 공룡 대전’이 저장 자연박물원 항저우(杭州)관에서 열렸다. 저장은 중국 동남부에서 공룡 종류가 풍부한 성(省) 중 하나이고, 후쿠이현은 일본의 유명한 ‘공룡의 고장’이다. 이번 전시는 저장 자연박물원이 처음으로 유치한 해외공룡전이자 후쿠이 현립박물관 화석의 첫 해외 전시이기도 하다. 두 박물관이 발견한 최신 공룡 화석과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이번 전시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오직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공룡 마니아’들까지 몰려들며 성황을 이뤘다.
박물관은 단순히 역사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주체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전시의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어 더욱 다양한 ‘개방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박물관은 더욱 왕성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박물관이 도시의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하나의 박물관을 위해 한 도시를 찾도록’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글 | 리자치 (李家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