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2024년 11월, 중국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최장 30일 비자 면제 정책을 시행한 뒤 왕래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 역시 이에 발맞춰 2025년 9월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 정책을 시범 시행했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 14개 주요 도시 호적 보유 주민을 대상으로 10년 복수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양국의 비자 정책이 상호 완화되면서 ‘지금 바로 떠나는 여행’은 더 이상 거창한 슬로건이 아닌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이 거센 변화의 물결이 닿는 곳은 관광 분야만이 아니다.

2026년 5월 2일, 중국 5·1 노동절 연휴를 맞아 한국 명동에서 프로모션 행사가 열린 가운데 거리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사진/VCG
관광 그 너머의 연결
중한 양국은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교역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에서 화장품, 리튬 배터리 소재부터 농수산품에 이르기까지, 산업망 업·다운 스트림을 연결하는 협력의 고리는 단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중한 항공 여객량은 439만 명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왕래의 문턱이 낮아지자 항공편을 이용하는 기업인, 구매 담당자가 늘었고 비즈니스 협상과 현지 조사, 교류 활동 역시 한층 활발해졌다.
문화 분야의 교류 또한 촘촘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중순에는 제11회 중한 국제 성악 콩쿠르가 서울에서 개최됐고, 7월 하순에는 한국 익산시에서 개최된 제19회 중한 청소년 스포츠 교류 초청 행사에 양국 청소년 선수 172명이 참가해 배드민턴, 농구, 탁구, 바둑 등 종목에서 친선 경기를 펼쳤다. 지난 5월에는 한국 광주에서 제32회 중한 서예 교류전이 개최된 데 이어, 6월에는 중국 선전에서 중한 문화 관광 교류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거의 매달 양국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 교류 행사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소비의 패러다임도 변화의 바람을 탔다. 과거 중국인 관광객은 주로 명동이나 면세점을 방문해 ‘싹쓸이 쇼핑’을 했다면, 지금은 성수동의 카페나 압구정동의 피부과, 연남동의 개성 있는 레스토랑을 찾는 등 한국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오감으로 느끼는 라이프스타일 체험을 추구한다. 한국인 관광객도 더 이상 중국 창바이산(長白山)과 장자제(張家界, 장가계)를 방문하는 단체 여행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형적인 패키지 관광에서 벗어나 상하이 우캉(武康)로에서 즐기는 시티워크, 청두(成都) 훠궈(火鍋) 맛집 탐방. 칭다오(靑島) 바다관(八大關) 일대 건축 답사 등 도시의 감성과 문화적 깊이를 함께 만끽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추세다.
비즈니스 투자에서 문화·체육 행사, 개인 소비에서 산업망의 연결까지. 각계각층의 인적 교류가 동시에 달아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회복의 수준을 넘어선 구조적인 도약이다. 다방면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거대한 활력은 이번 교류 열풍을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이끌며 그야말로 ‘전례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왜 ‘전례가 없다’라고 하는가?
과거의 양국 교류 절정기와 비교해 볼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아마도 ‘질적 도약’이라 부르는 편이 적절하다.
첫째, 두 나라 간 양방향 교류가 ‘전례 없는’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 절정기에는 교류 규모는 컸지만, 교류 양상은 비교적 단순했다. 중국인은 주로 스타에 대한 덕질과 쇼핑을 위해 한국을 찾았고, 한국인은 주로 비즈니스나 단체 관광으로 중국을 방문해 양측의 교차점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행과 비즈니스 미팅, 문화 교류, 스포츠·전시회 참여 등 모든 영역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소비가 아닌, 서로를 향한 양방향 수요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둘째, 일상화 정도가 ‘전례 없는’ 수준이다. 예전에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자 정책 완화로 절차가 간소화되고 항공편도 늘어나 오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기업인은 당일치기로 미팅을 진행할 수 있고, 유학생은 주말이면 고향집에 다녀올 수 있으며, 직장인은 금요일 퇴근 뒤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주말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비행시간은 약 두 시간 남짓.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것보다 빠르고,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고속철로 이동하는 것보다도 가깝다. 국경을 넘는 이동이 옆 도시 오가듯 일상이 되자, 인적 왕래를 가로막던 한계도 완전히 허물어졌다.
셋째, 자발적인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전례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비자 완화 정책이 판을 깔아주었다면, 그 위에서 가장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단연 소셜미디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에서 중국 여행 브이로그, 첨단 테크 체험, 로컬 맛집 탐방 같은 콘텐츠가 과거 소수 마니아층을 넘어 대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 콘텐츠가 ‘치트키’가 되자, 상하이나 청두, 칭다오, 선전 등 독특한 개성을 지닌 중국 도시를 소개하는 한국 크리에이터가 급증했고, 그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는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반대로 중국 팬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케이팝(K-Pop) 아이돌이 다녀간 장소를 찾아다니는 ‘성지 순례’에 나섰다. 스타가 방문한 레스토랑, 사진을 찍었던 거리는 순식간에 중국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단 한 편의 영상을 보고 선뜻 비행기표를 끊게 만드는 원동력. 아래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솟아오르는 개인의 열정은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하고 오래가는 힘을 지닌다.

2026년 7월 25일, 안후이(安徽)성 화이베이(淮北)시에서 열린 중한 청소년 국제문화교류 행사가 막을 내렸다. 행사 기간 중국과 한국 청소년 40명이 도시의 역사 및 문화를 탐방하고, 무형문화유산 예극(豫劇 허난·河南 전통극)을 체험했다. 이밖에 문화·체육 교류와 공예품 제작 등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우정을 다졌다.
‘전례 없는’ 활기는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이제 중국에서 한국은 더 이상 ‘케이드라마(K-drama) 속 배경’이 아니다. 한국을 찾는 이유도 스타 팬덤 활동이나 쇼핑 중심에서 의료 및 문화 체험 등으로 넓어졌고,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은 일부 중국 젊은이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국인에게도 중국은 이제 ‘뉴스나 매체로만 접하던 나라’가 아니라, 직접 찾아가 경험해 보고 즐기는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끊임없이 공유되는 생생한 중국의 모습은 지난날 간접 정보가 빚어낸 이미지를 대체해 나가는 중이다.
양국 관계의 관점에서도 이 넘치는 활기는 민의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 자체를 다시 짜고 있다. 한국인이 중국에 가장 많이 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되고, 중국도 한국의 최대 외국인 관광객 송출국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양국의 민심 기반은 ‘여론에 따라 쉽게 흔들리던 무른 땅’에서 ‘직접 겪은 경험으로 단단히 다져진 굳은 땅’으로 바뀌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전례 없는’ 활기가 지닌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이 흐름이 중한 사이의 모든 이견을 해소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달라졌다. 양국 사이의 거리는 더 이상 지도 위에 존재하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비행기표 한 장이면 언제든 도달하는 일상의 영역이 됐다. 중한 관계가 현재 겪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두 나라 국민이 저마다의 방식과 눈높이로 서로를 ‘재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한 수교 34년간 양국 관계는 굴곡이 있었지만, 이 관계를 오래도록 새롭게 만든 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일상의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상의 순간들은 중한 관계의 깊은 곳을 다지는 가장 두터운 토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