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4

2024년 말 찾은 중국 장쑤성 옌청(鹽城). 이곳엔 중국에 진출한 지 20년을 넘긴 기아(江蘇悅達起亞, 장쑤웨다기아)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기아의 중국 판매량은 2016년까지만 해도 65만 대를 넘어서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판매가 급감했고, 2021년 중국 내 판매량은 15만 대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비야디(比亞迪, BYD)를 비롯한 중국 토종 전기차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스마트카 기술을 앞세워 급성장했다. 폭스바겐과 도요타 같은 합작 브랜드는 물론 BMW·벤츠·아우디(BBA) 등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이들의 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기아는 중국 시장 부진을 글로벌 수출로 만회하는 길을 선택했다. 옌청 공장은 이제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 차량을 실어 나르는 ‘글로벌 수출 전진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옌청 공장 생산량은 약 25만 대 수준으로 회복됐고, 생산 차량의 약 80%는 호주와 중동, 중남미 등 해외 시장으로 향했다.
현대차 역시 중국 판매 부진에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전략형 전기차를 잇달아 선보이며 현지 연구개발(R&D)과 파트너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023년에는 광둥(廣東) 광저우(廣州)에 해외 최초의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생산·판매 거점을 구축하며 중국 수소차 생태계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단순한 완성차 판매를 넘어 중국의 미래 모빌리티 산업 생태계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상하이(上海) 모터쇼에 이어 올해 베이징(北京) 모터쇼를 직접 찾아 중국 시장과 현지 기술 경쟁력을 점검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모터쇼 현장에서 “가장 빠른 개발 속도와 우수한 배터리 공급망, 까다로운 전기차 소비자, 고도화된 혁신 생태계를 모두 갖춘 곳이 바로 중국”이라며 “현대차에 중국은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시장”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나 HL만도 같은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중국 시장 전략을 바꾸고 있다. 현대차·기아 중심에서 벗어나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고객을 확대하며 첨단 부품 공급을 늘리고 있다. 중국의 고도화된 자동차 공급망 생태계에 적극 편입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지난 4년간 중국 특파원으로 취재하며 지켜본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 기업인들의 시선이었다. 과거에는 중국 사업의 판매 회복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중국의 혁신을 어떻게 배우고, 이를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업이 훨씬 많아진 듯하다.
중국은 이제 세계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가장 먼저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됐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배터리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기술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미래 산업의 혁신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과 경쟁하고 배우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 기업들은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