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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의 중한 이야기


2026-08-17      

처음으로 떠난 주말 상하이 여행, 한국에서 만났던 콘서트 현장의 열기, 마음의 거리까지 단축한 직항 노선, 그리고 수없이 펼쳐진 교류의 무대까지. 최근 본지는 중한 양국을 오가며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는 네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직접 써 내려간, 다채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제 중국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가깝고 다정한 이웃 나라

김소연 (한국인 회사원)

“이 밀크티를 마시러 상하이(上海)에 또 와야지!” 이번 중국 여행을 마친 뒤 바로 든 생각이었다.


서울에 살며 평소엔 달콤한 음료보다 깔끔하고 쌉싸름한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우유가 들어간 라테도 거의 마시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상하이로 떠나기 전, 주변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중국에 가면 밀크티(奶茶)는 무조건 마셔봐야 해”라며 신신당부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몇몇 차 음료 브랜드를 찾아 나섰고, 결과는 완벽한 ‘입덕’이었다. 특히 ‘아마수작(阿嬷手作)’의 찹쌀떡 밀크티는 충격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쫀득하게 씹히는 찹쌀떡과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밀크티의 조화라니! 돌아서면 자꾸만 생각나는 그 맛에 “이 브랜드, 제발 한국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도 걸었다.


사실 예전의 중국은 선뜻 떠나기 망설여지는 곳이었다. 비자 발급이라는 번거로운 문턱 탓에 여행을 길게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무비자 정책이 시행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이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주말에도 훌쩍 떠날 수 있는 가까운 곳’이 됐다. 직장인인 내게 안성맞춤 여행지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물론 떠나기 직전까지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낯선 언어, 생소한 디지털 환경이 발목을 잡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상하이에 도착하니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고덕지도(高德地圖)와 위챗페이(微信支付), 차량 호출 앱 사용법이 간단해 금세 손에 익었다. 처음 식당에서 QR 코드로 주문할 때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더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헤맬 때마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주던 따뜻한 현지인들 덕분에 여행은 걱정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막상 겪어본 상하이는 쾌적하고 세련됐으며, 여행자를 환영하는 도시였다.


중국 여행 전 친구의 추천으로 <겨우, 서른(三十而已)>, <주렴옥막(珠簾玉幕)> 같은 중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면서 중국 사람들의 진짜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 상하이 일정은 뻔한 관광지 도장 깨기 대신, 도시의 결을 느끼는 일상 여행으로 채웠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동방명주(東方明珠)가 보이는 루프톱 바를 방문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진짜 상하이런(上海人)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이었다.


올 11월엔 부모님과 동생 부부, 조카들까지 데리고 다시 상하이를 찾을 계획이다. 조카들이 가장 기대하는 디즈니랜드에도 가고, 부모님과 함께 근교의 수향 마을도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상하이는 나이와 취향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도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내게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전의 중국이 모호한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감각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QR 코드 앞에서 허둥대던 순간, 루프톱 바에서 올려다본 낭만적인 야경, 그리고 여전히 입안에 감도는 그 찹쌀떡 밀크티의 잔향까지. 중국은 이제 마음이 끌릴 때 언제든 짐을 싸서 훌쩍 떠날 수 있는, 가깝고 다정한 이웃 나라다.


한국 여행, 내 삶의 스위치가 켜진 순간

커우루이(寇蕊, 중국인 회사원)

중학교 때부터 한국 아이돌을 좋아했다. 슈퍼주니어부터 엑소, 세븐틴까지 내 덕질의 역사는 줄곧 현재 진행형이었고, 서른이 된 지금도 그 열정은 식지 않았다. 이제 덕질은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다. 내게 한국 여행은 대부분 콘서트 때문에 시작되지만, 그 의미는 공연 한 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발 전 늘 꼼꼼하게 동선을 짜곤 하지만, 콘서트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요즘 핫한 숍들을 둘러 보고, 맛집도 탐방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골목길을 거닐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느껴본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전환되는’ 그 느낌이다.


평소 청두(成都)에서의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면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느낌이 든다.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아가는 어른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아이돌을 만나 수줍게 가슴 졸이고 하루 종일 눈부시게 행복해하는, 그 시절 소녀로 돌아갈 뿐이다.


콘서트 현장은 참 신기한 공간이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나와 같이 그룹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굳이 통성명하지 않아도 금세 마음이 통하고 수다가 시작된다. 상하이, 도쿄, 방콕 등 각기 다른 도시에서 날아온 이들이 오직 하나의 이유로 한 공간에 모여든 것이다. 수없이 플레이리스트에서만 들었던 그 음악이 내 눈앞에서 웅장한 현장 사운드로 울려 퍼지는 순간, 모두가 압도적인 열기 속으로 빠져든다. 다 함께 함성을 지르고, 뛰어놀고, 때론 함께 눈물도 흘린다. 그 밀도 높은 공기와 열정은 어떤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다. 그곳에서 깨닫게 된다. 팍팍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나와 같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말이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덕질은 내 청춘의 장면마다 깊게 스며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삶이 아무리 숨 가쁘게 돌아가더라도, 언제든 ‘마음의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출구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귀향을 ‘큰일’에서 ‘일상’으로 바꿔준 직항 노선

진영은(한국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예전에는 고향인 한국에 다녀오는 것은 휴가를 조율하고 한 달 전부터 계획해야 하는 ‘큰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주말이나 짧은 연휴만 있어도 다녀올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됐다.

2026년 4월 27일, 중국 이창(宜昌)과 한국 청주를 잇는 국제 여객 직항 노선이 드디어 열렸다.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하늘길 하나가 새로 생긴 것을 넘어 오랜 바람이 이뤄진 것이었다. 첫 직항편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그 가슴 벅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중 양국이 이토록 가까운데, 정작 집에 한 번 다녀오려면 정말 고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국 집에 가려면 이창에서 출발해 상하이를 거쳐 인천공항이나 청주로 환승해야만 했다. 대기 시간과 환승 시간, 수하물 처리 시간 등을 계산하면 편도에만 꼬박 7~8시간이 걸렸다. 항공편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거의 하루 종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직항이 생기기 전에는 일 년에 많아야 두 번 정도 한국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창에서 청주까지 비행시간은 단 2시간 반. 고향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총시간도 약 4시간으로 줄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된 셈이다. 올해만 다섯 번이나 집에 다녀왔다. 그중 한번은 당일 항공권을 구매해 집으로 향한 경우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가장 감격스러운 변화는 가족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좁혀졌다는 점이다. 예전엔 부모님이 나를 만나러 중국에 오시는 길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먼저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가셔야 했고, 다시 상하이로 날아가 환승을 거쳐야만 비로소 이창에 닿을 수 있었다.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께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직항편이 생긴 뒤 처음 이창을 찾으신 부모님은 “이제 딸 얼굴 보러 오는 게 정말 수월해졌다”라며 미소를 지으셨다.


속 시원한 직항 노선에 무비자 혜택까지 더해진 탓에, 올해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창-충칭(重慶)-장자제(張家界)’를 잇는 여행을 다녀왔다. 웅장한 싼샤(三峽)댐을 둘러보며 현지 별미도 맛보고, 고속철로 충칭으로 이동해 화려한 야경 속에 훠궈(火鍋)를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자제까지 둘러보는 완벽한 ‘효도 관광’ 코스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한 시간은, 내가 매일 숨 쉬듯 살아가던 중국에서의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께서 신기해하고 좋아하시는 반응을 보며, 중국의 생활 편의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새삼 느꼈다. QR 코드 주문, 온라인 명소 예약, 모바일 간편 결제, 심지어 새벽에도 주문 배달되는 시스템까지. 내게 당연했던 일상이 처음 방문한 부모님께는 매우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제는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보러 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직항 노선 하나가 가져온 변화는 비단 ‘시간’이라는 숫자뿐만이 아니다.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웠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 그 온기까지 이어준 셈이다.


 

양국이 ‘서로를 아는 단계’에서 ‘서로에게 다가서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느껴

진칭(金靑, 중국인 중한 이중언어 MC)

정부 포럼과 문화 교류 행사부터 각종 콘서트와 팬미팅까지, 나는 지난 수년간 300여 차례가 넘는 중한 교류 행사를 진행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올해 7월 한국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개최된 ‘추사 김정희 탄생 240주년 한중 국제 포럼’이었다. 행사 현장에서 한국 서예가 추사 김정희의 6대손 김광호 선생과 청(淸)나라 학자 완원(阮元)의 6대손 완석안(阮錫安) 선생이 처음으로 만났다. 200여 년 전, 김정희는 연경(燕京)으로 유학을 떠나 완원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200여 년 뒤, 그들의 후손이 다시 마주한 것이다. 두 어르신이 서로에게 다가가 뜨겁게 포옹하던 순간은 현장에 있던 내 가슴까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대 위에서 수많은 교류의 현장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있다. 양국 국민의 관계가 단순히 ‘서로를 아는 단계’에서 ‘서로에게 다가서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뉴스나 드라마, 영화, 책 등을 통해 다른 나라를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직접 여행을 떠나 그곳에 머물며 온몸으로 진짜 서로의 모습을 느껴보려 한다. 결국 진정한 인식의 변화는, 직접 발 딛고 겪어본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푸자오난(付兆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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