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1

지난 2012년 한국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 내 개봉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콜드워> 시리즈가 새로운 연대기로 돌아왔다. 현재 절찬 상영 중인 <콜드워1994>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3년 앞둔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 재벌 회장의 기이한 납치 사건을 도화선 삼아, 비정한 권력 속성과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을 날카롭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주인공 리원빈(李文彬)은 홍콩 환마오(環貿)그룹 황자후이(黃嘉輝) 회장을 둘러싼 의문의 납치 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단순 범죄를 넘어선 거대한 권력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쉬화이한(許懷翰) 경무처장과 차이위안치(蔡元祺) 부처장은 권력 승계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판(潘) 씨 재벌가 내부에서는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외아들 푼지응(潘志昂)이 상속권을 차지하기 위해 암흑가와 결탁해 고모부인 황자후이를 납치하는 일이 벌어진다. 리원빈은 경찰로서의 사명을 지키며 이 국면을 타개하고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과 암흑가 양쪽 모두에게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그는 마침내 아버지의 조언으로 자신이 놓인 거대한 체스판 같은 판도를 꿰뚫어 보고, 그 게임 속에서 살아남을 돌파구를 극적으로 찾아낸다.
영화는 리원빈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섬세한 층위의 감정선으로 풀어낸다. 초반부, 부하들에게 “경례 같은 건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그의 맑고 흔들림 없는 눈빛을 통해 그가 의리와 정을 중시하는 인물임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그는 사고를 친 부하의 뒷수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암흑가 조직폭력배 ‘라오완(老丸)’의 소굴에 잠입하는가 하면, 목숨을 잃은 동료를 위해 복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에 차이위안치는 전혀 다른 생존 철학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리원빈을 감싸고 지키는 듯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납치범들을 유인해 제거하고 인질을 탈취한 뒤 끝내는 암흑가의 손을 빌려 리원빈까지 없애려는 치밀한 음모를 짜 놓는다. 결국 의리와 권모술수가 공존할 수 없다는 냉혹한 법칙의 선을 지키려 했던 리원빈을 딜레마에 빠뜨리며, 그를 처절한 진퇴양난의 기로로 내몬다.
기존의 홍콩 범죄수사극이 선악의 대립에 초점을 맞췄다면 <콜드워1994>는 그 갈등을 훨씬 거대한 권력의 구조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의 제목인 ‘콜드워(Cold War)’는 본래 차이위안치가 정했던 최고 등급의 작전명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것은 점차 시스템적 위기를 상징하는 은유로 확장한다. 영화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운명과 상충하는 처지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제도와 인사 체계, 나아가 규칙의 빈틈까지 이용해 세대 간 연속을 이어가고, 또 시대 변천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정세를 좌우하고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지를 파헤친다.
결국 <콜드워1994>는 ‘선택’에 대한 영화다. 리원빈의 처절한 고뇌를 통해 ‘제도가 진실을 온전히 밝히지 못할 때도, 누군가는 기꺼이 회색의 경계에 서서 내면의 깨끗한 정의와 원칙을 지키려 한다’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너에겐 선택권이 있다. 넌 사람이지, 체스판의 말이 아니야”라는 영화 속 대사는 어쩌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가 건네는 가장 솔직하고도 묵직한 대답일지 모른다.
글ㅣ왕윈저(王韻哲) 난카이(南開)대학 신문방송학과 학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