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5

필자는 최근 ‘화교의 고향(僑鄕)’으로 불리는 중국 광둥(廣東) 장먼(江門)을 찾았다. 오늘날 전 세계 145개 국가와 지역에 거주하는 장먼 출신 화교는 530여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장먼 전체 인구(약 480만 명)보다도 많다.
청(淸)나라 말 전란과 빈곤이 이어지던 때 장먼 사람들도 살길을 찾아 미국과 캐나다, 동남아 등 해외로 떠났다. 상당수는 현지 탄광 노동자나 철도 건설 인부로 피땀 흘려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들의 꿈은 단순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좋은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 그렇게 해외에서 번 돈을 고향으로 부쳐 지은 집이 장먼 특유의 망루형 주거용 건축물 ‘댜오러우(碉樓)’다.
장먼 카이핑(開平)에 가니 곳곳에 유럽의 작은 성채를 연상케 하는 망루형 건축물이 눈에 띈다. 댜오러우다. 당시 치안이 불안했던 이곳에서 부유한 화교들은 도적 떼의 표적이 됐다. 화교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댜오러우를 세웠다. 댜오러우 외벽의 작은 창문에는 뾰족한 철창살과 두꺼운 철제문을 달고 총을 쏘기 위한 구멍도 곳곳에 뚫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1920~30년대 중국 농촌의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탈리아산 타일과 대리석 싱크대, 미국식 벽난로와 매트리스 침대, 양변기, 물 펌프 시설까지 갖췄고, 꼭대기엔 조상을 모시는 사당도 자리하고 있다.
이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카이핑 댜오러우는 광둥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중국과 서양 건축 양식을 융합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해외로 떠난 상당수 화교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결과 장먼 곳곳에는 주인 없는 낡은 댜오러우만이 오랫동안 쓸쓸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지 지방정부 주도로 댜오러우를 다시 살려내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창둥(倉東)촌 프로젝트다. 과거 화교들이 지은 낡은 건축물을 복원해 식당과 강당, 숙박시설, 카페, 창업 공간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이다. 옛것을 보존하되, 다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다. 해외 화교 후손들도 고향을 찾아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며 지역 경제에 힘을 보탰다.
화교들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지금도 화교들은 가족 행사나 조상 제사를 위해 마을을 찾고, 기부로 공동체를 돕는다. 필자가 창둥촌을 방문했을 때도 저녁에 열릴 촌장 손자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는데, 가이드는 해외 화교 친척들도 참석한다라고 귀띔했다.
사실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화교 네트워크는 중국 경제 발전의 버팀목이 됐다. 외국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중국 투자를 망설일 때 가장 먼저 중국 대륙으로 들어온 이들이 바로 화교 자본가였다. 태국 CP그룹의 다닌 치아라와논드(중국명 셰궈민·謝國民), 필리핀 SM그룹의 헨리 시(중국명 스즈청·施至成)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경험과 자본, 국경을 초월한 신뢰를 축적해 온 화교 네트워크는 오늘날에도 중국을 세계와 연결하는 중요한 가교 구실을 하는 듯하다.
글|배인선(한국) 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