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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술·산업·자본 생태계 가속화...한중 협력은 어떤 ‘판’을 짤 것인가


2026-03-07      


박지민(피더블유에스그룹 대표, 비욘드 엑스포 한국 대표, 한국경영학회 산업계 이사)


중국 15차 5개년  구상은 한중 협력의 ‘판’을 다시 그리려는 선언에 가깝다. 올해 중국 전국양회(全國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회의)에서 공개된 정부 업무보고는 15차 5개년  시기의 목표 및 중대 과제를 별도 장으로 제시하고, 2026년 정책 방향을 그 연장선에서 배치했다.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성장 논리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을 통한 고품질 성장 전환으로 옮겨가되, 둘째, 그 질적 전환은 시장 속에서 완성되는 방식 즉, 상용화·규모·생태계 경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양회에서 확인된 정책 신호는 ‘기술-산업-자본’의 동시 가속이다. 중국정부는 2026년 성장 목표를 4.5~5%로 제시하며, 재정·통화·산업정책을 한 방향으로 정렬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단일 산업이 아니라 전 산업의 생산성 인프라로 배치했다. 제조·모빌리티·유통·로봇 등 응용 영역에서 빠르게 출시하고 시장 데이터로 보완하는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이는 ‘연구개발(R&D) 중심 사고’에 익숙한 한국에 가장 낯설지만, 동시에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이다.


양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높은 수준 대외개방과 민영경제의 재부각이다. 정부 업무보고는 외자 유치·외무역 안정, 제도형 개방(규칙·표준·관리) 확대, 서비스업 개방, 투자 환경 개선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동시에 민영기업의 경영 애로 해소와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강조하며 민간의 혁신 및 투자 의지를 성장 동력으로 끌어올리려 한다. 이는 한중 협력에서 정부 간 MOU만으로는 부족하고, 민간 기업이 실제로 이익을 얻는 거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15차 5개년 계획의 실질은 디지털 트윈, 합성 데이터, 시뮬레이션 같은 ‘물리 세계의 디지털 인프라’로 수렴한다. AI는 더 이상 모델 성능만의 싸움이 아니다. 떤 산업이나 도시, 공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하고, 그 위에서 데이터를 생성·검증·학습시키는지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올라왔다. 중국은 정부 정책과 시장 경쟁을 결합해 규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공격적 투자로 산업을 ‘플랫폼·서비스·데이터’ 단위로 키운다. 그 결과 경쟁은 기술 경쟁을 넘어 ‘전략+생태계’ 경쟁으로 이동한다.


이 지점에서 한중 협력의 프레임을 다시 놓아야 한다. 2000년대 양국 관계는 한국 공급자, 중국 조립기지라는 수직 분업이 강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엔 기술·브랜드·표준을 두고 경쟁 관계로 전환됐다. 2023년 이후에는 한국의 대(對)중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구조적 역전’ 구간에 진입하며 심리적으로도 협력의 언어가 사라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 구간이 ‘수평적 협력’ 즉, 공동 문제를 공동 해결책으로 푸는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첫째, 산학협력은 공동 연구를 넘어 공동 검증으로 옮겨가야 한다. 중국의 대학·연구원·산업단지는 실제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테스트베드와 실증을 붙인다. 한국은 강한 기초·응용 연구 역량을 갖고도 대규모 실증과 데이터 축적에서 병목이 생긴다. 공동 랩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 ‘시뮬레이션 환경’과 ‘합성 데이터 파이프라인’이다. 이를 매개로 공동 논문·특허뿐 아니라 공동 제품화(표준·인증·안전)까지 연결해야 한다.


둘째, 중소벤처 협력은 수출 지원에서 시장 및 제품 공동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중국은 국내 시장에서의 빠른 상용화가 곧 글로벌 레퍼런스가 된다. 한국 스타트업은 기술이 뛰어나도 규모의 근거가 부족하다. 양회가 보여준 방향 즉, AI·로봇·전기차·플랫폼의 상업화 본격화 고려하면 공동 파일럿(중국) +공동 고도화(한국) +공동 제3국 확장(동남아·중동)’과 같은 3단계 모델이 실용적이다.


셋째,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판매가 아니라 수요를 읽는 조직을 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현지 정부·국가 및 () 산업단지·기업·대학·연구원·금융기관·서비스 업체(로펌 등)와 연결된 채널을 통해 수요기술 전달, 타겟 기업 발굴, R&D 수요 전달, 연구직 인재 채용 등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즉, 중국 시장을 고객이 아니라 ‘문제(수요)의 집합’으로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자본시장은 협력의 온도를 바꾸는 레버리지다. 중국은 중장기 자금의 시장 유입, 투자자 보호, 사모펀드 및 자회사 회수 경로 확대를 포함한 자본시장 개혁을 과제로 제시했고, 핵심기술 기업에 대해 상장·M&A 그린채널’과 같은 금융 지원을 언급한다. 이는 기술기업이 ‘제품-매출-자본’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은 반대로 기술기업의 스케일업·회수 시장이 얕다. 한중 간에는 단순 투자 유치가 아니라 공동펀드 및 공동 실증 기반 투자, 그리고 크로스보더 M&A(기술·인력·IP의 결합)까지 포함한 구조적 거래가 필요하다.


섯째, 기술협력은 ‘선택과 집중’이 전제돼야 한다. 경쟁·안보·규제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따라서 협력은 ▲스마트 제조(공정 최적화·예지정비) ▲디지털 헬스(비식별·임상 워크플로) ▲로봇·물류(시뮬레이션·합성데이터) ▲에너지·탄소(산업 데이터)처럼 상업성과 사회적 효용이 동시에 큰 영역에서 데이터·표준·검증 체계를 공동으로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수직 분업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수평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설계다. 서로를 이기기보다 함께 이길 수 있는 판을 다시 짜야 한다.


한중 관계는 더 이상 2000년대의 구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수평적 협력 구조로 전환할 수 있다면 2023년 이후 나타난 구조적 역전은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분업 구조가 형성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협력의 필요성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는 누가 더 앞서 있는지를 경쟁적으로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어떤 협력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중국 15차 5개년 계획과 올해 양회가 보여준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산업·자본을 하나의 생태계로 결합해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실행 능력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산업 전략과 자본시장, 기술 협력을 각각의 영역으로 분리해 접근하기보다 이를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새로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국 미래의 한중 협력은 과거처럼 단순한 분업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시장 그리고 자본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산업 생태계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는 경쟁과 갈등의 신호라기보다 한중 산업 협력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전환의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박지민(피더블유에스그룹 대표, 비욘드 엑스포 한국 대표, 한국경영학회 산업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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